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오세티야 전쟁 (문단 편집) === 긍정론 === 비록 조지아 측은 전쟁에서 완패를 했지만 사카슈빌리 조지아 대통령은 친러파에게 쫓겨나기는 커녕,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친미 정책을 펼쳤고, 거기에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단절되었다. 게다가 BTC 파이프라인의 완공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종속도 많이 완화되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친러파에게 쫓겨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 친미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어느 정도 조지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그 성과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경찰]]의 부패 척결이 있다. 전쟁으로 인해 군사·경제는 완전히 망했지만, 내부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여러 개혁을 취했기 때문에[* 개혁·개방 정책의 한 예로 조지아에 우호적이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거라 예상되는 국가에게 파격적인 비자법을 제정했다. 대한민국 국민 역시 이 법의 혜택을 받아 조지아에 360일 무비자로 입국 및 체류할 수 있다. 말이 1년 중 360일 무비자 체류이지, 이 정도면 사실상 비자 전면 폐지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EU 솅겐 조약에 의해 2014년 9월 1일부터 90일 무비자 바뀌었다.] 전쟁에서 패하고 엄청난 국토 상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했으나 오히려 사카슈빌리의 친미 정책이 더 힘을 얻었다. * 조지아 국민들에게 반러시아 감정을 확대시켰다. 이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가 상전 행세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국민들이 알았기 때문에 가뜩이나 지배받기 싫어하는 [[캅카스]] 민족들의 특징을 가진 조지아 사람들의 저항 정신에 기름을 붓고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지른 격이 되어 버렸다. 이와 관련된 한 가지 현상으로 전쟁 전에는 조지아 사람들이 [[러시아어]]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지만, 전쟁 후 조지아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교육 정책도 크게 바뀌어서 제1외국어는 [[영어]]로 지정되었고, 러시아어는 제2외국어로 격하되었다. 그 결과 조지아의 어린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안다. 전쟁 이후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자국명을 러시아식인 그루지야가 아닌, 영어식인 조지아라고 불러달라고 공식 요청한 것도 이러한 국민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